광주 양림동 피터슨선교사사택에서 만나는 붉은 벽돌의 근대 역사와 선교사의 삶
늦은 오후, 햇살이 붉게 물들 무렵 광주 남구 양림동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붉은 벽돌 건물이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피터슨선교사사택이었습니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며 반쯤 건물을 감싸고 있었고, 오래된 나무 창틀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문 앞의 표지석에는 ‘Petersen Missionary House’라는 영문 명패와 함께 20세기 초반 건립 연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공기 속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있었고, 정원의 나뭇잎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습니다. 이곳이 한 세기 전 외국인 선교사가 머물며 교육과 의료 활동을 펼쳤던 장소라고 생각하니, 시간의 흐름이 눈앞에 겹쳐 보였습니다.
1. 양림동 언덕길, 붉은 벽돌집으로 향하다
피터슨선교사사택은 양림동 선교사촌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피터슨선교사사택’을 입력하면 양림동 주민센터를 지나 좁은 언덕길로 안내되는데, 도로 끝에 붉은 벽돌 담장이 보입니다. 차량은 골목 입구 공영주차장에 두고, 걸어서 5분 정도 이동하면 좋습니다. 길은 완만하지만 양옆으로 오래된 주택과 선교 관련 건물이 이어져 있어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역사 산책이 됩니다. 입구에는 영어와 한글로 병기된 안내 표지가 세워져 있고, 건물의 외관을 보호하기 위한 낮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계단 옆에는 자그마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철제 난간에는 덩굴식물이 감겨 있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벽돌 위로 길게 비치며, 마치 건물 전체가 빛을 머금은 듯 보였습니다.
2. 서양식 주택의 구조와 공간감
피터슨선교사사택은 2층 구조의 서양식 주택으로, 붉은 벽돌과 목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면에는 현관 포치가 돌출되어 있으며, 둥근 아치형 기둥이 고풍스러움을 더했습니다. 창문은 위아래로 여닫는 더블새시 형태로, 유리 사이로 빛이 은은히 반사되었습니다. 실내는 벽난로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양쪽으로 거실과 서재가 이어져 있습니다. 바닥은 두꺼운 원목 마루로 되어 있으며, 발을 디딜 때마다 고요한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2층은 침실과 작은 발코니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양림동의 골목과 멀리 무등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내부의 가구와 조명은 복원품이지만, 당시의 생활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공간 전체에 단정한 리듬감이 있었습니다.
3. 피터슨 선교사의 삶과 남긴 흔적
피터슨 선교사는 1900년대 초 광주에 파견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이곳에서 의료와 교육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지역 주민에게 위생과 의학을 전파하며, 후에 기독교 계열 학교 설립에 기여했습니다. 사택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회의와 진료, 성경공부가 이루어졌던 장소였습니다. 안내문에는 피터슨이 당시 한국인과 함께 찍은 흑백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의 일기 일부가 번역문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순박하며, 함께 나눈 기도 속에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는 문장이 눈에 남았습니다. 외국의 선교사가 낯선 땅에서 남긴 기록이, 세월을 지나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는 듯했습니다. 건물 벽면에 스친 손자국이 시간의 층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4. 정원과 주변의 아늑한 풍경
사택 앞 정원은 넓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가꿔져 있었습니다. 잔디 사이로 작은 화단이 이어져 있었고, 라벤더와 장미가 어우러져 향기를 냈습니다. 벤치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잠시 앉아 바람을 느끼기에 좋았습니다. 뒤편에는 피터슨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우일선선교사사택’, ‘허철선선교사사택’ 등 다른 선교사 건물들이 인접해 있어, 한때 이 일대가 작은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붉은 벽돌, 흰 창틀, 초록 나뭇잎이 조화된 풍경이 마치 오래된 그림엽서 같았습니다. 정원에서 바라본 집은 단정하면서도 따뜻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양림동의 역사 공간들
피터슨선교사사택을 둘러본 후에는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양림교회’와 ‘선교사묘지’를 방문하면 좋습니다. 이곳은 같은 시기에 세워져 선교 활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공간입니다. 또한 ‘양림역사문화마을 안내관’에서 당시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전시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골목 안의 ‘양림1899’ 카페나 ‘양림면옥’에서 식사와 차를 즐기기 좋습니다. 오후에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 ‘오웬기념각’과 ‘정공엄지려’를 함께 돌아보면 양림동의 전통과 근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짧은 거리 안에 여러 시대의 이야기가 겹쳐 있어, 걷는 내내 역사의 숨결이 이어졌습니다.
6. 관람 팁과 유의사항
피터슨선교사사택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내부 입장은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가능하며, 단체 관람은 사전 예약이 필요합니다. 실내에서는 플래시 촬영과 삼각대 사용이 제한되며, 가구나 전시물을 직접 만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봄과 가을은 날씨가 온화해 정원 산책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여름에는 나무 그늘이 많지만 벌레가 있을 수 있으니 긴팔 옷을 추천합니다. 관람 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양림동 근대역사전시관’을 방문하면 사택의 복원 과정과 건축적 특징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머무르며 공간의 시간과 이야기를 느껴보는 것이 이곳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마무리
피터슨선교사사택은 단순한 외국인 거주지가 아니라, 문화와 신념, 사람의 마음이 오간 장소였습니다. 붉은 벽돌 사이에 남은 세월의 색감, 그리고 창문을 스치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고요함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집은 광주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던 시절,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이해와 존중을 배웠던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겨울 새벽, 하얀 서리가 내린 정원에서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피터슨선교사사택은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이야기의 집이자, 양림동의 역사와 사람을 품은 따뜻한 기억의 장소였습니다.



